상단영역

실시간뉴스
편집 : 2024-04-26 19:24 (금)

본문영역

  • 읍면소식
  • 입력 2023.10.27 20:43
  • 수정 2023.10.27 21:11
  • 호수 1477

[당신의 그날을 기록하다 11]
주민이 전하는 당진2동에 대한 기억 (원종경 전 당진주유소 대표)
60년 전 하천에서 모래 퍼다 논 메꿔 만든 ‘당진주유소’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시장 열리던 곳에 당진읍사무소와 군민회관 건립
1992년 한성아파트 시작으로 고층 아파트 생겨
산 지형으로 도시개발 한계…도시재생사업 지속성 중요

<편집자주> 

‘당신의 그날을 기록하다’는 도시재생 사업이 이뤄지는 주요 지점을 중심으로 주민 인터뷰를 통해 당진2동 도시재생사업으로 변화되는 마을의 모습을 기록하는 코너다. 이번 호에서는 ‘주민이 전하는 당진2동에 대한 기억’이라는 주제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채운동에서 45년간 당진주유소를 운영해온 원종경 대표를 만났다. 그의 기억 속에서 주유소를 비롯한 채운동은 어떤 모습으로 남았을까.

채운동 당진2교 교차로에서 당진고등학교 방향에 자리한 GS칼텍스 당진주유소(이하 당진주유소). 현재는 GS칼텍스 본사가 직영으로 운영하고 있지만 6년 전까지만 해도 원종경 대표가 직접 운영했다. 당진주유소는 원 대표의 아버지 故 원성길 대표가 설립해 약 15년간 운영하다, 1979년부터 아들 원종경 대표로 이어졌다. 부자(父子)가 약 60년의 역사를 이어온 당진주유소는 오랜 세월만큼 이력도 독특하다. 당진에서 가장 오래된 주유소이며 당진은 물론 충남도에서 처음으로 셀프주유소를 도입했다.

아버지 이어 45년간 주유소 운영

1949년에 태어난 원종경 대표는 성당초를 졸업하고, 서울로 유학을 떠나 성동중·성동고·고려대 농화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졸업 후 롯데공업주식회사(현 농심)에서 근무했고 당시 농심라면 개발에도 참여했다. 장남이었던 그는 아버지의 부름에 1979년에 다시 당진으로 내려왔고, 이때부터 45년간 주유소를 운영했다.

당진주유소가 설립된 1960년대 초반에는 자가용을 보유한 사람들이 많지 않아 주유소도 적었다. 당시 당진주유소를 비롯해 읍내에는 주유소가 단 2곳 뿐이었고 일반 자가용 보다 주로 화물차들이 주유소를 이용했다고.

원래 당진주유소는 당진수협 읍내지점 부근(구 군청사 앞)에 있었다. 당진주유소가 현재의 자리로 이전한 것은 1965년이다. 원종경 대표는 “주유소가 있기 전 이 지역 일대는 온통 논과 밭이었다”며 “당시 아버지가 하천에서 모래를 퍼서 우마차에 실어와 논을 메꿨고, 그래서 이교다리 건너기 전 지역보다 지대가 낮다”고 설명했다. 

“옛날에는 이 일대에 집이 하나도 없었어요. 일교다리 옆에는 방앗간(정미소)이 하나 있었고 당진상고(현 당진정보고)가 있었죠. 현재의 9988병원 자리에 작은 구멍가게 하나 있었고요. 또 현재는 사라진 현충각이라는 누각이 있었는데 옛날에는 현충일에 거기서 행사를 하기도 했어요.”

충남도 최초 셀프주유소 도입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주유소 업계 환경도 변하기 시작했다. 정부의 규제 완화 정책에 따라 1995년 주유소 거리제한이 완전 철폐되고, 자가용 운전자도 많아지면서 주유소 수가 급증했다. 당진에도 많게는 80~90개까지 주유소가 늘어났다고.

한국주유소협회 충남지회장을 맡으면서 그는 전국의 주유소업계와 세계 주유소 시장에 대해 시각을 넓혔다. 2007년에는 그 때 당시 우리나라에 정착되지 않았던 셀프주유소를 과감히 시도했다. 이는 당진에서도, 충남도에서도 처음이었다. 당진주유소가 셀프주유소로 바뀌면서 SK에너지 주유소에서 현재의 GS칼텍스 주유소가 됐고, 이때 리모델링으로 지금의 모습이 됐다.

그는 모든 주유기를 셀프기로 바꾸고, 고객이 찾아오면 직원들에게 절대 주유기에 손을 대지 말고 손님이 직접 주유하게 할 것을 강조했다. 물론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은 셀프주유에 거부감을 느껴 6개월간은 고생을 했지만 끝까지 버티면서 기름값이 저렴하다는 장점으로 당진주유소가 셀프주유소로 일찍이 정착될 수 있었다.

채운동 첫 아파트 ‘한성아파트’

오늘날 당진주유소에서 약 3분만 걸어가면 당진2동행정복지센터 및 꿈비채 아파트에 다다른다. 과거 이 자리는 당진읍사무소와 당진군민회관이 있었다. 

원 대표는 “논바닥이었던 여기에서 우시장이 열렸고, 그러다 당진읍사무소와 당진군민회관이 지어졌다”며 “읍사무소(1984년 건립)가 생기며 도시계획이 이뤄졌고 이 일대의 골목길들도 그때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논과 밭이던 곳에 행정기관이 생기고 점차 주변으로 연립주택과 아파트 등 공동주택이 생겨나면서 이 일대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원 대표는 “무궁화연립, 유승연립, 청실연립 등 4~5층짜리 공동주택이 생겼다”며 “다음으로 한성아파트(1992년 9월 입주, 총 4동 298세대)가 생겼는데 그 이후부터 당진에 10층 이상의 고층 아파트가 많이 들어서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도시 활성화? 정책 지속성이 중요”

과거에는 읍내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 채운리였기에 당시 도시개발이 이뤄지면서 주목받는 지역이었다. 하지만 더 큰 발전은 힘들었다고. 그는 “옥돌고개와 한성아파트 일대가 산이니까 격자형으로 도로가 생길 만한 위치는 아니었다”며 “이후 더 큰 발전이 없었고, 다음으로 대덕동, 수청동이 개발됐다”고 말했다.

원 대표는 채운동의 발전사를 떠올리면서 놀라움과 감탄을 전하면서도 우려를 표했다. 최근 몇 년 사이 이 일대에서 도시재생 사업이 진행됐다.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과거를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채운동이 변했지만 장기적인 성장으로는 이어지지 못했다. 그는 도시재생 사업에도 이것이 다시 반복될까 염려하고 있다.

“이교다리 건너서부터 당진2동행정복지센터 사이 지역에는 변화가 거의 없어서 아쉬워요. 주민들도 자체적으로 지역 활성화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아파트로 이사 가고 안 와요. 그래서 빈 땅들이 몇 군데 있어요. 도시재생은 지속성이 있어야 해요. 국가 예산을 확보해 이렇게 사업을 추진해놓고는 예산이 소진되면 이후부터 지자체는 나 몰라라 하죠. 지자체가 지속성 있게 관련 정책을 이끌어나가고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꽃가람 기자단 

저작권자 © 당진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5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