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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9.16 21:09
  • 수정 2022.11.08 08:59
  • 호수 1422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는 게 왜 이리 힘들던지…”
[어르신 영상 자서전 ‘학교 가는 길’ 3] 김점례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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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가방 싸면서 콧노래…즐거운 늦깎이 글공부
상처 많은 어린 시절 생각하면 여전히 눈물바람

 

<편집자주>
글을 배우지 못한 70~80대 어르신들은 가난한 집의 살림 밑천이었던 맏딸이었거나, 가방 대신 지게를 져야 했던, 학교 대신 갯벌로 나가야 했던 어린 소년·소녀였다. 해방 전후 태어나 6.25전쟁을 겪으며 사회적 혼란과 절대적 빈곤 속에 교육을 받지 못했던 사람들. 한 많은 시절 삶의 무게를 이겨내고 문해교육에 도전한 늦깎이 학생들의 인생 이야기를 기사와 영상을 통해 전하고자 한다. 서글픈 시대와 역사가 오롯이 담긴 삶을 기록해두고자 한다. 

※ 이 기사는 충청남도지역미디어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취재·보도합니다. 또한 유튜브 채널 ‘당진방송’을 통해 영상으로도 보실 수 있습니다. 

해나루시민학교 국화반 반장을 맡고 있는 김점례 할머니는 필통과 교재를 챙기며 책가방을 쌀 때마다 절로 콧노래가 나온다. 1952년생, 일흔이 다 돼서야 한글을 깨쳤다. 늦깎이 공부가 힘들 법도 하지만 그저 즐겁기만 하다. 

“공부가 나를 똑똑하게 만들어준다. 학교에 오면 친구들이 있고 선생님께서 이번 시간에는 무엇을 가르쳐주실까. 아, 정말 기대가 된다. 즐거운 나의 공부 시간.” (김점례 할머니의 일기) 

가난 때문에 큰집으로 

김점례 할머니의 고향은 정미다. 태어나기도 전에 아버지를 여의고,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여덟 살, 그 어린 나이에 어머니와도 떨어져 살아야 했다. 지독한 가난 때문에 큰집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그날의 일은 60여 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큰어머니가 나를 데리러 왔는데, 나는 가기 싫다고 도망다녔어요. 하얗게 눈이 쌓인 날이었는데 추운 줄도 모르고 눈밭으로 도망갔지. 엄마는 큰엄마 따라 가야 한다고 하고….”

일흔 넘은 노인의 마음은 아직도 여덟 살 꼬마로 남아 있는 것일까. 옛 이야기를 꺼낼 때면 아직도 하염없이 눈물이 흐른다. 육십갑자 한 바퀴를 더 돌고도 그때의 슬픔과 상처는 아물지 못했다. 

눈칫밥 먹으며 식모살이  

큰집에 가서 사랑받으며 풍요롭게 살았으면 좋으련만, 그곳에서의 삶도 녹록치 않았다. 뒤돌아서면 배고플 나이였을 텐데 밥도 제대로 얻어먹지 못하고 눈치 보며 살아야 했다. 그러다 10살 무렵 다른 집에 아기 보는 식모로 보내졌다. 10살 소녀 역시 어른의 돌봄이 절실한 나이였음에도 가난과 부모 없는 설움 앞에서 세상은 참 냉혹했다. 

식모살이를 했던 그 집에서도 괄시받으며 지냈다. 이따금씩 큰집에 갈 때면 사촌오빠가 왜 돌아왔냐고 때렸다. 제법 커서 엄마를 다시 찾아갔지만, 엄마도 쌀쌀맞았다.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다. 

“엄마가 왜 왔냐고 하데. 날이 저물어 어두운데 나보고 가라더라고. 엄마 살던 그 집에 할머니가 계셨는데, 이 밤중에 어딜 보내느냐고 자고 가라 그래서 하룻밤 묵고 나왔지. 내 어릴 적 사연이 길어.” 

꼼방울 따다 팔아 생계 이어

스무 살에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그러나 여전히 가난했다. 첫아들을 낳고 3일 만에 나와 ‘꼼방울(솔방울의 서산 지역 사투리)’을 따다 팔았다. 남편 두 가마, 나 한 가마. 산에서 딴 꼼방울을 머리에 이고 당진까지 나와 팔면 그렇게 몇 푼이 손에 쥐어졌다. 그 돈으로 밀가루를 사서 수제비를 끓여 먹었다. 

김점례 할머니는 “친할머니가 우릴 그렇게 미워했다”며 “어느 날 아들을 구박하길래 할머니에게 대들고 싸웠다”고 그날을 회상했다. 그렇게 할머니에게 속에 있던 말을 꺼내놓고는 저녁 밥도 못 얻어 먹었단다.  

힘겨웠던 인생의 계단 

돌이켜 생각하면 삶의 한 계단, 한 계단을 오르는 게 너무 힘들었다. 한 고비를 넘기면 또다른 고비가 찾아왔다. 그렇게 칠십평생을 살았다. 

그러나 김점례 할머니는 힘겨웠을지언정 인생의 계단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어렸을 때 미처 배우지 못했던 글공부를 하며 다시 계단을 오르듯 한 글자씩 한글을 깨우쳐 나간다. 그가 살아온 인생의 계단에 비하면 공부는 에스컬레이터 같다. 이렇게 재밌을 수가 없다. 오늘도 김점례 할머니는 설레는 마음으로 책가방을 싼다.

“더운 날씨에도 우리를 가르쳐주시는 선생님, 만나면 언제나 반가운 친구들 모두 모두 사랑하고 정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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