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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우강면 부장리 남원포구 1 우강에서 가장 번화했던 포구

기사승인 [1400호] 2022.04.11  16: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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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강면 부장리에 위치한 남원포구는 강문리의 사발포(부리포)와 더불어 1970년대까지 우강에서 가장 번화한 포구였다.

인천행 여객선의 기착지였으며, 남원포구를 중심으로 상권이 형성돼 사람들로 늘 북적였다. 부장리농협이 설립되면서 부장리는 물론, 인근 마을의 벼를 수매하고 도정해 남원포구에서 곧장 인천으로 판매했다. 

남원포구에는 시장이 형성되어 정육점, 이발소, 약방, 자전거포, 오토바이 대리점, 술집과 음식점이 영업했다. 남원포구에는 주로 인천행 여객선과 쌀 등을 실어 나르는 화물선이 출입했다. 하지만 어선은 많지 않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부장리의 어선들은 삽교천에서 남원포구로 이어지는 갯고랑 곳곳에 정박했는데, 주로 어민들이 자신의 집과 가까운 곳에 배를 정박한 것으로 보인다. 1970년대 이전에는 부장리에 정착한 피난민들을 중심으로 어업이 이뤄진 것으로 조사됐다. 

우강면의 포구에 배가 가장 많을 적에는 부리포와 남원포에 각 30~40척의 배가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남원포에는 일제강점기 선박 취급소로 주식회사 마르보시가 소재해 있었다. 당시 지방민들이 소유한 배는 12~13척이 있었고, 나무나 소금 등을 실은 배가 들어오면 포구 내에 30~40척이 있었다. 

삽교천방조제가 건설되기 전까지 남원포에는 인천행 여객선이 드나들었다. 여객선은 인근 마을의 손님은 물론 쌀과 잡곡, 계란 등을 싣고 인천항을 오갔다. 특히 신평면 주민들은 인천에 사는 친인척을 방문하거나 인천으로 유학을 떠날 때, 물건을 사올 때, 상인들이 물건을 판매하러 갈 때에 남원포에서 여객선을 이용했다. 

우현선 작가 

당진시대 webmaster@djtimes.co.kr

<저작권자 © 당진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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