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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는 이야기] 사기소2통 최기예·전순화 어르신
연필 한 자루 쥐어본 적 없었는데…“이제 작가됐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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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해교육으로 배운 글과 그림 더해 시화집 출간
출판기념회 열고 당진시립도서관에서 전시 중

팔십 평생 제 이름 모양새만 알고 까막눈으로 살아왔다. 글 읽을 줄 몰라 겪은 일들은 나열하기조차 어렵다. 팔십 넘어 ㄱ, ㄴ, ㄷ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나이에 글을 배우려니 여간 어려운게 아니었다. 거기다 코로나19로 수업이 비대면으로 이뤄지며 처음엔 19명이었던 사기소2통 문해교육 대상 어르신이 9명밖에 남지 않았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배운 글과 그림을 담아 최기예·정순화 어르신이 시화집을 출간했다. 그리고 이를 축하하며 지난달 27일 당진시립도서관에서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88세 최기예의 삶
올해 미수(米壽)를 맞은 최기예 어르신은 우리 말을 쓸 수 없었던 일제강점기 당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여자로 태어나 배움의 기회도 적었는데, 그나마 배운 게 일본어였다. 할아버지가 준 12줄의 문장만 닳을 정도로 보면서 익힌 글 몇 자가 전부였다. 

14살에 어머니를 떠나보낸 무남독녀 외동딸은 한순간에 아버지와 단 둘만 남게 됐다. 16살부터는 아버지 바지 저고리를 만들기 시작해 이젠 바느질은 눈 감고도 할 정도다. 최 어르신은 “굳세게 잘 살아온 나, 여기까지 왔네”라며 자신의 삶을 시화집에 담았다. 최 어르신은 글을 몰라도 12년 동안 화장품을 팔기도 했다. 글도 모르는데다가 셈까지 익숙치 않아 꽤 고생을 했단다. 그래도 회사로부터 개척상도 타고 직장 내에서 칭찬도 받으며 일했고, 아이들을 키워냈다. 그는 “요즘도 내 손이 정말 자랑스럽다”며 “잠 잘 때 빼고는 주야로 바쁜 고맙다 내 손”이라고 시화집을 통해 전했다. 

87세 정순화의 삶
87세의 정순화 어르신은 “선거하러 가려면 머리 속이 답답했다”고 시화집 첫 장에 적었다. 
“아무것도 몰라 가슴 속은 쿵쾅쿵쾅. 한 칸 두 칸 세어보고 꾸욱 찍었다. 이제 좋은 선생님 만나 글 배웠더니 내가 원하는 사람에게 어깨 쫙 펴고 투표할 수 있어서 꿈만 같다. 글 배우니 이렇게 환한 세상 되는 것을. 어디서나 자신 있는 내가 되는 것을. 더 열심히 배워서 좋은 글도 써야겠다.” <정순화 어르신 시화집 중>

글을 깨치니 세상이 훤해졌단다. 정 어르신은 “마치 날아다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결혼 후 사기소2통에서 자리 잡고 평생  농사일을 하며 살아왔다. 글을 몰라 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았다. 하지만 글을 아는 지금은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며 하루하루가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가족 대표들 모여 출판 축하
출판기념회가 열린 날에는 가족들이 모두 모였다. 설 전임에도 불구하고 대전에서, 서울에서 손녀와 아들이 가족을 대표해 찾았다. 최기예 어르신의 손자 이진우 씨와 정순화 어르신의 아들 성낙청 씨는 할머니와 어머니에게 출판기념회를 열어 준 것에 감사함을 전하기도 했다. 그리고 기념식에는 서산에서 온 이영월 시인이 어르신의 인생을 듣고 현장에서 시를 지어 전하기도 했다. 

두 어르신이 시화집을 내고 출판기념회를 열기까지 4년의 시간이 걸렸다. 당진시 평생학습과에서 실시하는 찾아가는 문해교육을 통해 이상자 문해교사가 어르신들에게 글을 가르쳤다. 이상자 문해교사는 배움의 즐거움을 전하고자 그림도 함께 가르쳤다. 색연필을 처음 접하는 어르신들은 처음엔 자신들이 그림을 어떻게 그리냐며 손사레를 쳤다.

삐죽빼죽 칠했던 그림들이 점점 작품이 됐다. 재미를 느껴가며 문구점에서 좋은 색연필을 사기도 하고 정순화 어르신이 손주에게 받은 그림책을 최기예 어르신과 나눠 보며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그 결과 어느 것과도 견줄 수 없는 그림들이 나왔고 시화집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 

현재 어문학실에 전시 중
두 시화집은 현재 당진시립도서관 어문학실에 전시돼 있다. 더불어 오는 6월에는 사기소2통에서 글과 그림을 배우는 어르신 10여 명도 모두 시화집을 출간할 예정이다. 이상자 문해교사는 “치매예방에도 좋고 행복감을 느끼라고 한글 숙제와 함께 그림 도안을 가져다 드렸는데 어르신들이 그린 그림을 보고 얼마나 깜짝 놀랐는지 모른다”며 “도안을 보고 손수 스케치를 하고, 색칠도 얼마나 잘했는지 그림을 보고 가슴이 쿵쾅거렸다”고 말했다. 이어 “그림을 배워본 적 없는 분의 그림이 너무나 훌륭했기 때문에 꼭 책으로 엮고 싶었다”면서 “오는 6월에는 모든 어르신의 시화집을 출간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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