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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는 이야기] 원예로 꿈 키워가는 농아인 박애란 씨(우강면 창리)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벽 허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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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청성 청각·언어장애…“노래 듣고 소통하고 싶어”
테라리움 2급 자격증 취득…전국 경진대회 준비 중

농아인 박애란 씨가 제15회 충남 생활원예경진대회에서 최우수상(1위)을 수상했다. 이어 한국테라리움협회가 주관하는 테라리움 2급 지도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그의 바람은 노래도 듣고, 사람들과 자유롭게 대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받은 문제지에서도 현실의 어려움을 마주했다. 같은 한글을 사용할 뿐 농아인의 언어세계는 청인들과는 다르다. 어순도 다르고, 같은 말이지만 의미 또한 다르다. 모든 것이 청인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회에서 농아인들이 작은 차이들이 만든 높은 벽을 뛰어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어렵고 힘든 벽을 넘어 박 씨가 도전에 성공했다. 

“꽃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져요”

박 씨는 청각과 언어 장애를 갖고 태어났다. 보청기를 사용하지만, 자동차 경적 수준의 소리만 들릴 뿐 일상 소리는 듣지 못한다. 대신 그의 언어는 손에서 피어난다. 듣는 것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의 손끝에서 그려지는 수어와 글을 통해 세상과 소통한다.

박 씨는 경북 청도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남편의 직장이 있는 당진에 온 것은 지난 2014년이다. 그에겐 취미가 많다. 뜨개질과 손글씨인 POP도 취미다. 스쿠버 다이빙은 자격증 취득까지 목표로 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꽃을 사랑한단다. 그는 “우울할 때 꽃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며 “꽃을 보면 다양한 색깔이 마음 속에서 피어나는 것만 같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도 꽃을 보면 뛰어가서 관찰하곤 한다”며 “오죽하면 아이들이 ‘꽃만 보지 말고 자기들도 보라’고 장난스럽게 말할 때가 있다”고 덧붙였다. 

“출전 자체에 큰 의미 가져”

오랫동안 꽃을 좋아했어도 원예를 본격적으로 배운 건 이번이 처음이다. 당진시 평생학습도시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당진시장애인복지관에서 지난해 8월부터 11월까지 40회에 걸쳐 원예 프로그램 ‘내 마음의 정원’이 진행됐다. 지도강사는 강영희 플로리스트가 맡았으며 장애인 3명과 비장애인 3명이 수강했다.

프로그램이 이뤄지며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하는 계기가 자연스럽게 마련됐다. 프로그램을 담당한 민선홍 사회복지사는 “비장애인 참여자 중에는 수어에 관심을 가지며 복지관 수어교실에 등록한 사람도 있다”며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자연스럽게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관계가 맺어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 박 씨는 원예에 남다른 손재주를 보였다. 이를 눈여겨본 강영희 플로리스트가 박 씨에게 원예대회 출전을 추천했다. 대회에서 박 씨의 손이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어 냈다. 둥근 접시에 원예정원을 만들어 내는 분야에서 박 씨는 고장난 선풍기뚜껑 등 재활용품을 접시로 사용했다. 그는 “물건이 버려져 있는 것이 안타까워 재활용하고 싶었다”며 “물건을 쉽게 버리는 요즘 환경에 대해 생각하는 기회가 됐으면 했다”고 말했다. 

한편 농아인이 이 대회에 출전한 게 처음이었다. 수어 통역을 요청하자 대회 주최 측에서도 당혹스러워했다고. 그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차별이 많이 없어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벽이 있다”며 “이번 대회 수상이 그 벽을 허무는 데 역할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시상하기 전까지만 해도 수상에 대한 기대가 없었어요. 참여만으로도 좋았죠. 3등과 2등을 부를 때에도 제 이름이 없어 기대하지 않았는데 최우수상(1위)에서 제 이름이 호명돼서 너무 놀랐어요. 현재는 출전권을 얻어 전국대회를 준비하고 있어요. 충남대회도 장애인으로서 제가 첫 출전이었는데, 전국대회도 마찬가지인지 궁금해요. 장애인으로서 출전하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싶어요.”

“한국어와 다른 수어”

현재 당진지역에는 언어·청각장애가 있는 사람은 2000여 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중 수화를 사용하는 농아인은 150여 명 뿐이다. 수화로 대화가 이뤄진다고 해도 농아인이 겪는 일상의 어려움은 결코 적지 않다. 임상빈 수화통역사는 “수어는 한국어가 아닌 한국 수어일 뿐 한국어와 수어는 완전히 다른 언어”라며 “어순도 다르고 단어 의미도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박애란 씨가 테라리움 자격증 필기시험에 합격한 것은 대단한 일”이라며 “마치 비장애인이 영어 문제를 푸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수어와 한국어는 달라요. 예를 들어 누군가 음식을 건넬 때 ‘괜찮다’고 하는 건 비장애인에게 거절의 의미를 담고 있지만 수어로 ‘괜찮아’를 뜻하는 손짓은 ‘저 음식이 괜찮으니 먹겠다’는 말이예요. 운전면허 필기시험처럼 영상으로 문제가 출제되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죠.” (임상빈 수화통역사)

박애란 씨도 일상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으며 살아간다. 병원과 약국에서 본인을 불러도 듣지 못해 차례를 지나쳐버리기 일쑤고, 여러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싶어도 들을 수가 없어 포기하곤 한단다. 박 씨는 “수화통역사가 당진에 많이 없는 데다가 항상 수화통역사와 함께할 수 없는 어려움도 있다”며 “일상에서 작은 것들부터 달라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나만의 꽃가게 문 열고파”

한편 박 씨는 자신만의 꽃가게를 그리고 있다. 그는 “꽃으로 작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꽃가게를 운영하고 싶다”고 전했다. 덧붙여 그동안 함께 해 준 사람들에게 감사인사도 건넸다. 그는 “프로그램을 기획한 민선홍 사회복지사와 당진시장애인복지관, 지도해 준 강영희 선생님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번 인터뷰는 임상빈 수화통역사의 도움을 받아 진행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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