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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마을 이야기 14] 신평면 거산2리 “서드물 큰 샘에서 용이 승천해 용난샘으로 불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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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로 아미산과 통신했던 할미봉
“서울 가려면 거산2리를 꼭 거쳐야 했어”

▲ 드론으로 촬영한 신평면 거산2리 일대의 모습.

<편집자주>
오랜 시간 동안 터를 잡고 있는 보호수와 누구도 찾지 않는 열녀문, 그리고 주민들의 입에서 입으로만 전해지는 전설들이 여전히 마을을 지키고 있다.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없어진 마을이나 없어질 위기에 처한 마을, 또한 자연마을 중에서도 농촌 고령화로 인해 전통의 맥이 끊길지도 모르는 마을의 이야기를 기록하고자 한다. 본지에서는 ‘우리마을 이야기’라는 기획취재를 통해 기사와 영상으로 마을의 이야기를 담아낼 계획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취재·보도됩니다.

신평면 거산2리는 현재 8~9개의 아파트가 위치해 있고 7700여 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는 마을이다. 과거에는 신평면 인구의 절반이 살았던 마을이기도 했다. 
임선묵 이장은 “거산삼거리 버스정류장에는 신례원을 거쳐 서울로 향하는 직행버스가 하루에 1~2대 다녔다”며 “서울에 가야하는 사람들은 모두 거산2리로 오곤 했다”고 말했다. 

▲ 과거 거산삼거리 일원에서 소년소녀회가 조기청소를 하고 있다.

용이 승천한 큰 우물 ‘용난샘’

신평면지에 따르면 거산2리에는 부골, 중말(가운데말), 아랫말, 금의골, 서드물, 거미장터 등의 다양한 자연부락이 존재했다. 부골은 골짜기마다 부자가 살았다고 해서 ‘부곡’, ‘보골’이라고 불렸으며, 중말은 거산2리 한가운데 위치해 ‘가운데말’이라고도 불렸다. 금의골은 깊숙한 골짜기에 작은 소나무들이 무성했고 애기묘가 많았다고 한다. 

주민 한철동 씨는 “금의골에 덕고개라는 곳이 있었다”며 “아이가 죽으면 덕대 위에 시신을 올려놓았다고 전해진다”고 말했다. 

또한 서정초등학교가 자리한 마을은 서드물이라고 불렸다. 이곳은 지형이 늙은 쥐가 우물가로 물을 먹으러 내려오는 형국이라 노서하정이라고도 했는데, 줄여서 ‘서정’이라고 더 많이 불렸다. 서드물에는 큰 샘이 있어 남산리 뱃골마을 주민들도 이곳에서 물을 길어 먹었단다. 그 샘에서 용이 승천해 ‘용난샘’이라고 이름 지어졌다고.

임선묵 이장은 “용난샘에 물고기가 많았다”며 “두레박으로 물을 퍼서 물고기를 잡았다”고 회상했다. 박효우 전 노인회장은 “서정초 운동장 끄트머리가 샘 자리”라며 “서정초 이름의 근원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어 “서정초를 세우고자 1960년대에 거산2리 주민들이 십시일반으로 성금을 모아 학교 터를 마련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 과거 거산삼거리 일원에서 소년소녀회가 조기청소를 하고 있다.

조선시대 때 오일장이 섰던 ‘거미장터’

더불어 거미장터라는 마을은 거산장대라고도 불렸다. 이곳은 조선시대 때 오일장이 섰던 곳이라서 거미장터라고 이름 지어졌다. 이 마을에는 열두 간이나 되는 상당히 큰 집이 있었고, 일제시대까지 동쪽 언덕에서 대장간이 운영됐다. 마을 서북쪽에는 할미봉이라는 산이 있었는데, 봉화로 아미산과 통신했다고 전해진다. 

할미봉은 지금의 신성미소지움 아파트 자리로 아파트가 건축되면서 그 흔적이 모두 사라졌다. 그럼에도 이곳에서 나고 자란 주민들에게 신성미소지움 아파트는 지금까지도 할미봉이라고 기억되고 있다. 남동쪽 흥국사 앞에는 군사용 말을 기르는 곳이 있어 말굴레라고 불렸고 남쪽으로는 오봉천을 왕래하는 목교가 있었는데 여기에 건달들이 자주 모여든다고 해 건달다리 또는 곤달다리라고 불렸다. 

▲ 1980년 취락구조 개선사업 입주식의 모습. 현 거산감리교회 앞쪽으로 5곳의 집을 일괄적으로 똑같이 지어 분양했다.

누에고치 기르며 소득 창출

한편 1960년대 거산2리 주민들은 양잠업으로 소득을 창출키도 했다. 양잠업은 누에를 길러 비단을 만드는 산업이다. 당진시에서는 1961년 농가소득사업으로 양잠을 대대적으로 육성했다. 당시 신평면은 충남 최대의 잠업단지로 성장했으며, 신평면에서 생산한 누에고치는 거산2리 농협창고에 보관됐다. 당시 양잠업은 지역주민들의 큰 소득원이었단다. 

지금은 양잠업이 없어지고 자연부락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 거산2리가 점점 도시화 되고 있지만 이곳에서 거주하고 있는 선주민들은 선조들에게 구설로 전해지고 있는 역사들을 잘 간직하고 있다. 

▲ (왼쪽부터) 한철동 씨, 한기훈 씨, 박효우 전 노인회장, 임선묵 이장

올해 96세인 거산2리의 최고령 노인 한기훈 씨는 “나이를 많이 먹어 옛날 이야기가 생각이 잘 안난다”면서도 후배들이 하나 둘 꺼내는 옛 이야기에 맞장구를 치기도 했다. 임선묵 이장은 “거산2리 토박이들이 점점 나이가 들어가고 있다”며 “아파트가 생기면서 젊은 이주민들이 늘긴 했지만 소통이 어려워 아쉽다”고 말했다. 이어 “이웃들 간 오가는 정이 점점 사라지고 있어 이장으로서 안타깝다”면서 “정이 많던 거산2리로 다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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