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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콩나물국밥 운영하는 황인화 대표 (대덕동)
“인생의 단맛 쓴맛 짠맛을 들려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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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에 상경해 서울서 30년간 가수 활동
“슬픔 잊게 한 노래로 희망 전하고 싶어요”

대덕동에 자리한 콩나물국밥집에서 특별한 음악회가 펼쳐졌다. 매달 마지막주 화요일마다 열리는 음악회는 국밥집을 운영하는 황인화 씨의 작은 무대다. 그는 삶의 고비가 있을 때마다 노래를 통해 오뚜기처럼 일어났다. 그래서 황 씨의 노래에는 단맛, 쓴맛, 짠맛이 녹아 있다.

 

“죽음까지 생각했죠”

당진에서 성장한 황인화 씨는 스무 살의 어린 나이에 결혼했다. 고대면 진관리로 시집을 가서 종가의 제사를 챙기고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며 3남매를 길렀다. 아이들 교육 때문에 시내로 이사와 옛 당진군청 앞에서 중국집 낙원식당을, 이어 남산에서 미진슈퍼를 운영키도 했다.

어린 나이에 시작한 결혼생활은 쉽지 않았다. 남편과의 갈등으로 스트레스는 커져만 갔고 이는 고스란히 황 씨의 몸과 마음에 쌓여갔다. 가만히 있다가 쓰러지는 일이 다반사였고 잠도 제대로 못 자 몸 상태가 엉망이 됐다. 삶의 의욕이 떨어지고 정신적으로 피폐해졌던 황 씨는 죽음까지 결심하고 수면제를 먹기도 했단다.

그는 “계속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정신을 차리자는 생각에 운동을 시작했다”며 “몸이 고되면 잠이 잘 오겠다 싶어 아이들을 재워놓고 밤새 남산공원과 당진시내를 뛰어다녔다”고 말했다.

밤새 거리를 뛰어다니다 해가 뜰 무렵 집에 들어가기를 20여 일 반복했다. 그동안 밤에 자지 못했던 잠을 낮에라도 자고, 운동을 하니 긍정적인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20대에는 아이를 키우고 살림하느라 정신없이 살다가 30대가 되면서 인생이 무엇인지 점차 깨닫게 된 그는 강원도로 혼자만의 여행을 떠나 자신의 삶을 되돌아봤다. 황인화 씨는 “남편과의 갈등에 건강도 악화되고 삶을 제대로 살아가지 못했다”며 “더 이상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고단한 삶 잊게 한 노래

이혼 후 상경해 서울살이를 시작했다. 떡볶이·붕어빵 장사, 식당 설거지 등 아무런 연고 없는 서울에서 자리 잡기 위해 해보지 않은 일이 없을 정도로 치열하게 살았다. 과로로 잠시 공장 일을 쉬고 있던 황 씨에게 기분전환을 시켜주겠다며 동료가 전국노래자랑 예선에 출전시켰다.
그는 “당시 몸이 아픈 상태라서 노래를 잘 부르진 못했다”면서 “전국노래자랑 출전 당시 가져온 다른 가요제 팜플릿을 보고 가요제에 도전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건강이 좋지 않거나 할 때면 종종 우울감이 나를 덮쳐왔다”며 “이를 이겨내고자 가요제에 더욱 관심을 가졌다”고 덧붙였다.

전국에서 온 300명 중 단 20명을 뽑는 예선에서 황 씨는 당당히 예선을 통과했다. 그는 가요제에서 이미자의 <아씨>를 불렀고 결선에 올라 금상을 수상하기에 이르렀다. 황 씨는 “노래 가사가 내가 시집가던 날의 모습을 그리는 듯해 이 노래를 즐겨 불렀다”며 “이후 가요제 입상자들끼리 돈을 모아 옴니버스 앨범을 내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를 시작으로 전국 곳곳에서 열리는 가요제와 노래자랑 등에 출전해 여러 차례 대상을 수상했다. 이미자 노래를 잘 불러 이미자 모창가수로 행사에서 공연하기도 했고, 방송과 라디오에 출연하기도 했단다. 이후에는 개인 앨범 <바람에 몸을 실어>를 제작해 전문가수의 길을 걸었다. 황 씨는 “고단했던 삶을 노래로 잊을 수 있었다”면서 “노래할 때 가장 큰 행복을 느낀다”고 말했다.

무명가수로 노래만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는 건 힘들었기에 KT 본사에 입사해 일했다. 마케팅전략실장까지 하면서 연봉이 1억 원을 넘길 정도로 열심히 일했던 그는 2012년에 명예퇴직했다. 명예퇴직 후 개인연습실을 노래교실로 활용해 사람들에게 노래를 가르치며 살았다. 그렇게 지난해까지 노래교실을 운영하다 코로나19로 문을 닫을 수 밖에 없었다.

 

“노래로 봉사하고파”

지난해 2월, 그는 30년 만에 당진을 찾았다. 다시 당진에 터를 잡은 그는 지난 3월초 대덕동에 콩나물국밥집을 차렸다. 몇몇 사람들은 음표를 ’콩나물 대가리‘라고 표현하곤 하는데, 황 씨 역시 이것에 착안해 식당 이름을 ’노래하는 콩나물국밥‘으로 지었다. 그가 노래하는 가수이니 제법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뭔가 색다른 이름에 국밥집을 찾는 손님들이 그 이유를 궁금해했고 하나 둘 이유를 설명하니 어느샌가 손님들이 그의 노래를 기다렸다.

고객들이 노래를 요청하면 불러주기도 했던 황 씨는 아예 작은 음악회 하는 날을 만들었다. 매달 마지막주 화요일 오후 6시부터 11시까지는 공연을 하는 날이다. 그날 만큼은 국밥집 사장이 아닌 가수 황인화가 된다. 황 씨는 “그런데 지난달 말에는 갑자기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음악회를 진행하지 못했다”며 “손님들이 언제 다시 음악회를 열까 궁금해하는데 코로나19 추이를 살피면서 진행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어린 시절을 보낸 당진으로 돌아온 만큼 그는 자신의 재능으로 고향을 위해 봉사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황 씨는 “1년 넘게 이어진 코로나19로 많은 사람들이 우울감을 호소하고 있다”며 “코로나 블루를 극복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고자 버스킹을 하고, 노래자랑도 하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평생의 숙원은 따로 있다. 독거노인 등 어르신들에게 따뜻한 밥 한 그릇을 대접하고 노래를 부르면서 재능기부 봉사를 하는 것이다. 황 씨는 “가진 재능이 노래밖에 없다”면서 “이젠 당진시민과 나누고 싶다”고 전했다.

“힘들었던 일들을 이겨내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저에게 힘을 준 것이 노래였어요. 삶을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노래를 부르면서 이겨냈고, 결국 여태껏 내 삶을 살아왔어요. 다른 사람들에게도 노래로 삶의 희망을 전하고 싶습니다.”

 

>> 황인화 씨는
-1964년 출생
-2012년~2020년 서울에서 노래교실 운영
-음반 <바람에 몸을 실어> 발매
-대덕동 노래하는 콩나물국밥 운영
박경미 기자 pkm940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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