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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입력 2021.01.11 17:57
  • 호수 1339

[시론]황영애 시인
웃음 사냥꾼이 되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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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밝았다. 불끈 솟아오르는 태양을 보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소원 하나가 더 생겼을 것이다. ‘코로나19가 없는 세상이 되게 하여 주소서’라고….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웃음을 잃은 날을 살고 있다. 무기력과 우울 속에서 찌푸린 유폐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벌써 1년이 넘는 시간을 마음의 우물을 메마르게 한 채 그렇게 보내고 있다. 놀이터에서, 시장에서, 음식점에서 그 어느 곳에서든 까르르 소리내며 환하게 웃어 본 적이 언제였던가.

꿈속에서조차 웃음을 기억하지 못하는 코로나19의 창궐이라는 재난 속에 생기를 잃고 사람과의 관계는 차츰 멀어지기 시작했다. 어느 매체에서는 만성적 불안에 의식이 짓눌린 상태를 ‘코로나 블루’ 라는 진단이 나왔다고 한다. 프롬알데히드로 채운 작은 유리병에 갇힌 듯 숨이 막힌다.

요즘 사람이 없는 곳을 피해 운동을 하다 보니 대덕산 숲길을 자주 걷는다. 한때 푸른 잎을 달고 열매를 키웠을 소나무 밑 망개넝쿨에 눈길이 갔다. 햇빛을 잘 볼 수 없어 틈새 빛으로 줄기를 몇 뼘이나 키운 망개나무, 그리고 수많은 이름 모를 그늘을 만들어내는 나무를 보고 있자니 이 정도의 코로나19에 마음을 무너트리고 있었다는 생각과 한없이 연약해진 마음이 부끄러웠다.

순간 알프레드 디 수자 시인의 시가 생각이 났다.

춤춰라 아무도 보지 않는 것처럼.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노래하라, 아무도 듣지 않는 것처럼.
일하라, 돈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살아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나는 이 시를 읽으며 ‘웃어라, 아무 걱정이 없는 것처럼’으로 바꿔 몇 번이고 읽어보았다. 힘들어도 웃음을 잃지 않는다면 코로나19로 세상이 잠시 멈춰있어도 그늘 속 넝쿨처럼 한 뼘 한 뼘 뻗어 나갈 수 있는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옛날부터 우리 조상들은 탐관오리의 횡포와 수없이 겪은 전쟁과 질병, 가난 속에서 익살스러운 웃음을 잃지 않았다. 힘든 삶을 우스꽝스럽게 풍자하여 반기를 들었을 것이다. 웃음과 한없이 가벼운 익살로 풀어, 독이 묻은 화살을 쏘는 쾌감을 느끼며 지금보다 더 어려운 세상을 슬기롭게 헤쳐나갔다.

지금 창궐한 코로나19에 웃음을 잃고 외로움과 처절하게 사투 중일지라도 거울을 보며 웃는 연습을 해보자. 환희와 행복에 의한 웃음은 그동안 숱하게 맛보지 않았는가. 지금부터 한 번도 먹어 보지 못한 외로움과 고립과 고통, 슬픔을 웃음으로 요리해 최고의 먹방을 해 보자. 웃음은 불행을 중화시킨다고 하지 않았는가? 웃음이 빈곤하면 사소한 불행의 나락에 더 깊이 빠져들 것이다. 그동안 사소하게 누리던 단순한 행복이 얼마나 귀한 사치였던가를 깨달았다.

없어서 불행했던 것이 아니라 넘쳐서 불행했던 지난날을 반성하면서 다시 여행 가방을 꾸리고 그리운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는 그 날을 맞이하기 위해 웃음 연습을 매일 하자. 망개넝쿨은 한겨울에도 새로운 잎눈을 키우느라 분주할 것이다. 우리도 코로나19 없는 희망의 날을 위하여 두려움을 떨쳐내며 분주한 웃음 연습을 해두자. 좀 더 욕심을 낸다면 웃음 사냥꾼이 되어보자. 고난의 날들은 곧 지나가리라. 웃는 자에게 기쁨과 희망이 있는 미래로 데려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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