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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바지’를 아시나유?
[세상사는 이야기] 당진 사투리 수집가 조일형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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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동안 사투리 모아 퇴직과 함께 책 발간
말모이 공모에 참여해 720개 당진 사투리 전해
갯것·객괭이·쭉쟁이 장날 등 사라지는 우리말

“참 어렵게 찾은 사투리가 있어요. 분명 어릴 때 썼던 말인데 지금 생각하려니 떠오르지 않는 거예요. 사람들 쫓아다니면서 물어봤죠. 그때 누가 탁 던지더라고요. ‘왕바지’ 아니냐고!”

초가집의 이엉을 묶기 위해 추녀 끝 양쪽 서까래를 고정해 놓은 가늘고 긴 막대를 ‘왕바지’라고 불렀다. 더는 초가집에서 살지 않는 시대가 오면서 왕바지라는 말도 우리 입에서 오르지 않게 됐다. 당진 사투리 수집가인 조일형 씨는 “말에도 수명이 있다”며 “언어도 태어나서 번창하다 소멸된다”고 말했다. 소멸하는 사투리들을 보며 안타까웠던 조 씨는 잊혀져가는 사투리를 하나 둘 모으기 시작했다. 

고대초 부임하며 사투리 수집 시작

송산면 삼월리 출신의 조일형 씨(74·읍내동) 씨는 42년간 교편을 잡았다. 교육청 근무를 거쳐 2000년 9월, 고대초 교장으로 부임하며 본격적인 사투리 수집이 시작됐다. 

마을 주민들을 만나다 보니 처음 듣던 말들이 귀에 들어왔다. 조 씨는 “우리 세대가 지나면 기억하지 못할 말이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그는 사투리를 ‘줍다시피’ 모으기 시작했다. 메모지 한 장을 품고 당진 사투리가 있을 것 같은 곳을 찾아다녔다. 주로 노인들이었다. 새로운 단어가 나오면 뜻을 물어 메모지에 옮겨 적었다. 고대초에서 시작한 이 수집 활동은 면천초와 서정초, 당진초로 부임지를 옮기면서 10년간 이어졌다. 그렇게 모은 사투리는 2010년 퇴임하면서 집필한 책 <지랑이 뭐래유>에 담겼다. 

책이 나온 지 10년째 되는 올해 드디어 빛을 보았다. 조선일보가 ‘말모이 100년, 다시 쓰는 우리말 사전’ 공모를 진행한 것이다. 사투리에 관심이 많은 조 씨가 몇 개의 단어를 추려 공모에 참여했다. 이를 눈여겨본 국어문화원연합회 김형주 상명대 교수에게 연락이 왔고, 조 씨의 책이 전해졌다. 그렇게 그는 사라져가는 720개의 당진 사투리를 세상에 알리게 됐으며 나아가 당진대표로 충청팀에 속해 사투리를 남기는 데 역할을 할 예정이다. 

“되바라지지 않아 좋아요”

조 씨는 “충청지역 사투리는 ‘되바라지지’ 않아서 좋다”고 말했다. 그가 느끼는 충청 사투리는 친근함이다. 이 가운데 당진 사투리는 충청 사투리기도 하지만 표준어와도 비슷한 것이 특징이란다. 같은 충청도이지만 공주와 서천, 보령, 논산과는 또 다르다고. 이처럼 사투리에는 그 지역의 환경과 문화가 담겨 있어 모두 다른 특징을 갖고 있다. 

바다를 두고 있는 당진에서는 바다와 관련한 사투리가 많다. 그 중 ‘갯것’과 ‘객괭이’를 소개했다. 갯것은 바다에서 나는 물고기와 조개, 해조류 등을 통틀어서 이르는 말이다. 반면 객괭이는 괭이갈매기를 부르던 말이었단다. 

이 말에는 조 씨의 추억도 담겨있다. 조 씨 역시 바다를 곁에 두고 자랐다. 석문방조제가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그가 살던 곳에서 2km만 가면 염전이 펼쳐져 있었다. 염전은 어린 조 씨와 친구들의 놀이터이기도 했다. 염전의 바닷물을 가둬 놓는 저수지에서 수영하고 망둥이 잡던 것은 오랜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는 “염전에서 한 번 놀고 나면 여름날 더워 생긴 땀떼기(땀띠)가 한 번에 사라지곤 했다”고 말했다. 
 
장날과 관련된 사투리들

한편 당진에서만 들을 수 있는 사투리도 있다. ‘쭉쟁이 장날’과 ‘반쪽 장날’이 그렇다. 5와 10으로 끝나는 날 장이 서는 당진장은 31일까지 있는 달에는 30일이 아닌 그달의 마지막 날에 장이 선다. 그럴 때면 30일에도 작게 장이 열리곤 하는데, 이를 두고 쭉쟁이(쭉젱이) 장날 혹은 반쪽장날이라고 불렀단다. 껍질만 있고 속에 알맹이가 들지 않은 곡식이나 열매를 말하는 쭉정이처럼 비어 있는 장날을 뜻한다.

이 말은 조 씨가 시장을 갔다 우연히 주운 말이다. 물건을 팔던 한 할머니가 “오늘은 쭉쟁이 장이라 손님이 없다”는 말을 듣고 냉큼 물어봤단다. 이처럼 우연히 사라지는 우리 사투리를 만날 때면 어느 때보다 기분이 좋다고. 

장과 관련한 사투리가 또 있다. 장이 흥하던 옛날에는 장에 물건을 팔기 위해 농민들이 조금씩 농산물을 머리에 이고 팔러 나오곤 했다. 그 길목에서 농민들로부터 물건을 사서 되넘기는 장사꾼들이 있었는데, 이들을 ‘되멕이 장사’라고 불렀다. 조 씨는 “옛날엔 어렵게 살았어도 쌀 한 말을 사면 한 주먹 더 얹어주는 인심이 있었다”며 “그 인심 덕을 보기 위한 되멕이 장사들이 종종 있었다”고 말했다. 
  
“일본 잔재 말들 많아 아쉬워”

우리 정신과 문화가 담긴 사투리를 만날 때도 있지만 종종 안타까울 때를 마주하기도 한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일본이 우리 정신을 헤치기 위해 만들어 낸 용어를 발견할 때다. ‘배다리’라는 말은 바닷물이 들어오던 수로를 통해 배가 철교 밑까지 드나들었다는 데서 유래한 말이다. 한자를 사용하면 배 주(舟) 자를 사용해 ‘주교’로 쓰이지만 일제감정기를 거쳐 ‘이(艃)교’로 흔히 불렸다고. 조 씨는 “일본이 억지로 한자를 사용해 만든 말들이 많다”면서 “일본말인지도 모른 채 쓰는 말도 많다”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도시락을 벤또로, 택시를 타쿠시로 많이 썼죠. 지금도 방송 촬영 현장이나 건축 현장에서는 일본 용어가 많아요. ‘거푸집’(금속을 녹여 부어 물건을 만들기 위한 틀)을 ‘가다와구’라고도 흔히 부르죠. 안타까운 현실이에요.”

“본업에 충실하고 있어요”

한편 조 씨는 요즘 “본업에 충실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퇴임 후 ‘먹고, 자고, 놀고’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단다. 산악회 일신회 회원들과 함께 동네 산을 오르고 내리는 것이 요즘의 낙이다. 

본업에 충실하면서도 아직도 그의 마음  속엔 사투리 수집 활동이 살아있다. 일제강점기 잔재가 남은 말을 찾거나, 당진 사투리와 우리말을 엮어낸 <지랑이 뭐래유> 제2호를 발간하는 것이다. 그는 “우리 사투리가 더 많이 남겨졌으면 좋겠다”며 “이젠 나이가 들어 어려울 수도 있지만 한 번 해보고 싶은 일”이라고 전했다. 끝으로 그는 우리 사투리를 넣어 인사를 전했다. “다들 건강히 몸 성이 지내슈!”

>> 조일형 씨는?
-1947년 송산면 삼월리 출생
-서산교육청, 당진교육청 장학사
-가동초 교감, 
  고대초·면천초·서정초·당진초 교장 
-<지랑이 뭐래유> 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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