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이 GS EPS 일원에서 전력구(송전선로) 공사를 시작한 뒤 해당 지역의 지반침하 현상이 급격하게 심화되고 있어 부곡공단 입주 기업들이 가스폭발 등 언제 터질지 모르는 안전문제를 우려하며 공포에 떨고 있다. 그러나 한전과 가스공사, 당진시 등 관계 기관들이 미온적으로 대처해 공분을 사고 있다.
한국전력은 지난 2017년 5월부터 신당진-북당진 간 전기공급시설 전력구(345kV 송전 6회선, 154kV 송전 2회선)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공사 현장 인근에 위치한 건물에 균열이 생기고 벽면이 떨어져나가는 등 지반침하로 인한 피해가 눈에 띄게 가속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일대에 입주해 있는 기업들은 공장 건물과 시설들이 언제 무너져 내릴지 모를 상태에서 매일 불안에 떨고 있다며 호소했다.
특히 부곡공단에는 도시가스 공급을 위한 관로와 대형 저유시설 및 수소탱크 등이 설치돼 있고, 불산 등 위험물질을 다루는 공장들이 입주해있어 자칫 대형사고로 이어지진 않을까 우려되는 상황이다. <관련기사 본지 제1240호 ‘송전선로 공사 중 건물균열 및 지반침하’ 기사 참조>
“차수벽 설치 안 해…총체적 부실공사”
지난해 12월 이상 징후가 심각해지자 일대 기업들은 지난 1월 2일 당진시와 한국전력에 공사중단을 요구하는 민원을 제기했다. 하지만 뚜렷한 대책마련 없이 공사가 계속됐고, 지반침하 현상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이에 지난 18일 어기구 국회의원실의 주재로 산업통상자원부, 한국전력, 가스공사, 당진시 등 관계 기관이 현장을 방문하고, 피해기업들의 의견을 듣는 자리가 마련됐다. 하지만 이날 회의에 취재진이 온 것을 본 한국전력 측은 취재에 대한 사전 고지가 없었다는 이유로 회의 참석을 거부해 시작부터 논란이 일었다.
부곡공단에 입주해 있는 아하엠텍 안동권 대표이사는 “공사를 위해 지하 60m까지 파내면서 사전에 차수벽 설치가 이뤄지지 않은 것 같다”며 부실공사 의혹을 제기했다. 안 대표는 “차수벽도 설치하지 않은 채 흙이고 뻘이고 다 파내 이 사달이 났다”며 “곳곳에서 이상징후가 심화되고 있는데, 위험요소를 무시하고 아무런 조치 없이 공사가 계속 강행되고 있어 불안해서 살 수가 없다”고 호소했다.
현대호이스트 송근상 대표이사는 “회사 자체적으로 일주일 단위로 계측하며 기록하고 있는데, 1월 16일에 62mm 벌어졌던 틈이 2월 13일에는 73mm로 늘어났다”면서 “한 달 만에 건물이 1cm 이상 기울었는데 한전과 가스공사는 문제가 없다고만 한다”고 울분을 토했다.
신의페트라 고재훈 기획이사 또한 “공장 바닥침하가 무섭게 진행되고 있다”면서 “공장 건물 아래 지반이 침하돼 200~300mm의 차이가 생겼고, 공장바닥이 허공에 떠 있는 것을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이곳은 50t 이상의 중장비 수십 대가 오가는 곳이어서 더더욱 지반침하로 인한 붕괴를 크게 걱정하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이화글로텍에서는 현관문이 닫히지 않거나, 수도관에 균열이 생겨 수도요금이 평소보다 1000만 원이나 더 나와 당진시가 일부 보전해주는 등 급속도로, 다발적으로 지반 붕괴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피해기업 계속 늘어나
상황이 심각해지자 한국산업단지공단 당진지사에서는 부곡공단에 입주해 있는 전체 120여 개 기업을 대상으로 지반침하 현상이 있는지 공문을 보내 조사했다. 첫 번째 조사에서 7개사가 피해를 신고한 데 이어, 최근 2차 조사를 벌인 결과 최소 4개 이상의 기업에서 추가적으로 이상현상을 신고했다. 그러나 현장조사를 실시하면 피해규모는 훨씬 더 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피해 기업들은 최근 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송근상)까지 결성한 상태다.
하지만 공사 발주처인 한국전력과 한국가스공사 측은 아직까지는 전력구 공사가 지반침하의 원인이라고 특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날 참석한 가스공사 관계자는 “계속 계측을 하며 모니터링 하고 있지만 주요 가스시설의 안전성은 크게 문제가 없다”며 “현재는 안전하지만 지반침하가 계속되면 향후 안전은 보장할 수 없다”고 말했다.
생명 위협하는데 보상 운운?
한편 산업통상자원부 측에서는 대형 안전사고를 우려하는 입주기업들의 호소에 미온적으로 대응하며 ‘보상’을 운운해 빈축을 샀다. 최우석 전력산업과장은 “100% 안전한 것은 없겠지만 보고받은 결과, 가장 최신의 공법으로 공사를 진행하고 있고, 현재는 전문가(가스공사)가 괜찮다고 말한다”며 “산업부에 공사중단 권한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지반침하 및 안전문제와 관련해 용역을 준비 중”이라며 “빨리 용역을 진행하고 시시비비를 가려 보상 등을 처리해야 한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입주기업들은 보상이 문제가 아니고, 책임소재를 가리기에 앞서 당장 공사를 중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화글로텍 윤종필 전략기획실장은 “계획처럼 6월말 용역을 마칠 땐 이미 채굴공사가 끝나 지하에 관로가 관통될 것”이라며 “비가 오는 등 날씨 변화에 따라 지반침하는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매우 시급한 상황임을 강조했다.
한편 안동권 아하엠텍 대표이사은 “지하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 제35조에 따르면 해당 지역의 시장·군수·구청장은 제출받은 지반침하위험도평가서를 검토한 결과 지반침하의 위험이 확인된 경우에는 지반침하 중점관리시설 및 지역을 지정, 고시해야 한다”면서 “빨리 공사부터 중단하고, 사안의 심각성·시급성을 고려해 특별안전관리지역으로 지정해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