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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입력 2019.02.19 19:06
  • 호수 1244

[칼럼] 김완종 당진시장애인달팽이문학회 사무국장
장애인달팽이문학회를 창립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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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유일하게 해 보고 싶었던 꿈.

내가 남들과 달리 탁월한 재주가 있어서도 아니다. 장애인으로 살면서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네가 할 수 있는 게 뭐있어. 해봤자야”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사회의 시선은 차갑고도 냉랭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장애가 있는 몸이라 누군가 도와주지 않는다면 취업은 아예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작가’였는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도 간섭 받지 않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는지도 모른다. 오랜 세월 책 속에 파묻혀 살았다. 틈만 나면 글을 쓰고 버리고, 다시 쓰기를 반복하며 살았다.

창작을 한다는 것은 세상에 내로라하는 이름 있는 작가들조차도 머리를 쥐어 짤 만치 고통스런 작업이라 했듯, 나에게도 글 쓰는 작업 또한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전문적인 지식을 습득했던 것도 아니고, 유일하게 배운 지식이라고는 어머니 등에 업혀 다닌 초등교육 4년이 전부였다. 당연한 결과였겠지만 매번 공모전에 작품을 응모하고, 또 낙선했다. 그럴 때마다 소리 없이 좌절감이 스며들었다.

어쩌면 겁 없이 덤벼든 무모한 도전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평생 글 쓰는 것에 미쳐 살았지만 변변한 글 하나 세상에 내 놓지 못했다. 그나마도 바람막이를 해 주시던 부모님마저 내 곁을 떠나고, 20년 넘게 공장 생활을 하면서 글에 대한 욕망은 접어야만 했다.

세상을 살면서 누구나 한번쯤은 기회가 찾아온다고 하듯,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임대 아파트로 보금자리를 옮기고 장애인복지관을 다니면서 컴퓨터를 익힐 수 있었다. 또 수채화를 배우고, 캘리그라피를 배우고…. 함께 많은 인연을 맺어 가면서 이옥하 시인을 만나게 되었다.

그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우연찮은 기회에 그의 살아온 이야기를 듣게 됐다. 자신도 장애를 갖고 있으면서도 열심히 일하고 세상과 당당히 부딪히며 살아 온 이옥하 시인. 가슴 저미는 아픔을 한 편의 시로 승화시키는 이 시인의 모습을 보며 글에 대한 나의 욕망이 깨어났다.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

저승길 노자돈마저 못난 아들 손에 꼬옥 쥐어 주고 홀연히 떠난 어머니. 병든 자식을 위해 숱한 세월 길 위에 눈물방울 떨구며 사셨던 어머니의 삶을 글로 담고 싶다는 꿈을 다시금 품게 되었다.

그래서 당진시 장애인달팽이문학회 창립이 나에겐 남다른 느낌인지도 모른다. 동변상련과 같다.

크고 작은 아픔을 가슴에 안고 사는 사람들과 서로의 고통을 어루만지며, 같은 목적을 갖고, 함께 할 수 있는 삶에 동지를 만나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마음 속에만 묻고 살았던 끼와 열정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터전을 일궈나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설렘이고 행복한 삶이 될 것이다.

명예도 아니다. 물질적 풍요로움도 아니다. 고단하고 힘들었던 삶이다.

무겁게만 누르던 장애의 아픔들을 한편의 시로 풀어낼 수 있다면, 한편의 작품으로 누군가의 삶에 작은 희망의 불씨를 지펴줄 수 있다면 해볼 만한 가치있는 일일 것이다.

소박하게 시작했지만 모든 장애인들에게 꿈과 희망을, 삶에 가치관과 자긍심을 심어줄 수 있는 장애인달팽이문학회이자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아픈 이들이 찾아와 자신의 절박함을 풀어 놓고 갈 수 있는 ‘당진시장애인달팽이문학회’로 성장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실망하지마 / 다시 가 보는거야 / 내일은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 행복이 널 기다려’
- 이옥하 시인의 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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