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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속으로 추억속으로]이한복 공간목련아파트 관리소장
“보고 싶은 나의 은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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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악읍 중흥리에서 태어난 나는 가학리와 석포리에서 자랐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당진농협에 취직해서 고향을 떠나지 않고 35년간 근무했다. 정든 직장을 떠나 주택관리사 자격증을 취득해 현재는 신평의 공간목련아파트 관리사무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1. 나의 은사님, 김영기 담임 선생님
나는 송악초와 송악중, 당진상고를 졸업했다. 첫 번째 사진은 고등학교 3학년 시절에 담임선생님(김영기)과 찍었던 사진이다. 나의 마지막 담임선생님인 그는 인자한 성품을 가진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이 아직까지도 당진에 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가까이 계신 은사님을 찾아뵙지 못해서 마음 한 구석에 항상 죄송함이 남아 있다. 올해는 꼭 찾아뵙고 싶다.

2. 35년간 근무했던 당진농협
나는 20살(1978년)때 농협에 입사해 송악농협에서 첫 근무를 시작했다. 그 당시 회사에 젊은 직원이 많아 처녀, 총각 모임인 ‘처총회’가 만들어 지기도 했다. 처총회는 평소 일찍 출근해 주변청소 등 궂은 일을 하고 매월 회비를 모아 불우이웃을 돕기도 했다. 사진 2-1사진은 처총회에서 봉고차를 빌려서 야유회 갔을 때 사진이다. 하지만 처총회에서 이뤄진 남녀는 없었다. 2-2 사진은 당진농협 상무시절이다. 나는 나이에 비해 승진이 빨랐다. 33세에 승진고시에 합격해서 상무로 발령을 받았다. 경제상무로 1년, 신용상무로 2년, 인천직판장에 파견근무로 1년을 근무했다.

3. 다양했던 사회활동모임
나는 졸업을 하진 못했지만 방송통신대학을 다녔었다. 방송통신대학에는 당진지역에서 공부하는 교우들이 모인 당진교우회가 있었다. 현재 방송통신대 당진학생회의 시초다. 3-1사진이 당진교우회 회원들과 함께 남산에 놀러갔을 때의 사진이다. 지금과 달리 당시에는 남산에 아무 것도 없었다. 3-2 사진은 송악로타리클럽 회장으로 취임할 때 모습이다. 이·취임식 행사 대신 한진 해안가에서 쓰레기 수거로 이·취임식을 대신했었다. 마지막 사진은 수목회 회원들의 모습이다. 정년을 채우지 못하고 퇴직해 개인적으로 1~2년 간 많이 힘들었다. 그 때 수목회 선배들이 힘을 많이 불어넣어 줬다. 덕분에 다시 기운을 차릴 수 있었고 주택관리사 자격증까지 취득할 수 있었다. 나에겐 너무도 감사한 이들이다.

4. 가족과의 추억
난 25세 때 아내 김천순 씨와 결혼했다. 당시 (구)송악농협이 종합청사를 신축해 2층 회의실을 예식장으로 겸해서 썼는데, 우리 부부가 이 예식장에서 처음 결혼식을 올렸다. 주례는 이영웅 전 농협중앙회 당진군지부장이 맡아줬으며 웨딩카는 이 전 군지부장의 관용차로 대신했다. 한편 나는 1993년에 1년간 인천광역시 구월동 농산물직판장에서 파견 근무했다. 당시 첫 파견근무자였다. 그 때 가족과 떨어져서 살았는데 주말에 아들 상원이, 강원이가 나를 찾아와 함께 월미도를 갔을 때 찍은 사진(4-2)이다. 두 아들들은 잘 자라줬다. 한편 우리 처가에 식구가 많다. 지난 2015년에는 처가 7남매와 장모님과 서해안 일주를 한 적이 있었다. 올해 또 한 번 가보고 싶다.

김성준 인턴기자 rlatjdwns02@naver.com

>> 이한복 관리소장은
·1959년 송악읍 중흥리 출생
·송악초·송악중·당진상업고등학교 졸업
·전 송악로타리클럽 회장
·전 송악·송산·당진·합덕·신평농협 근무
·현 신평면 공간아파트 관리소장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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