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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
  • 입력 2018.12.21 18:24
  • 호수 1237

<상록수> 주인공 박동혁 모델, 심재영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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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의 씨 ‘소설 <상록수>와 공동경작회’ 당진문학 수록
“심재영 활동 및 행적, 소설 속 박동혁과 달라”

심훈의 대표작 소설 <상록수>에서는 일제시대 농촌계몽운동을 펼친 박동혁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지금까지 박동혁의 실제 모델이 심훈의 조카인 심재영 씨라고 알려진 가운데, 최근 박동혁의 모델이 심재영이 아니라는 새로운 주장이 제기됐다.

지난달 30일에 발간한 당진문학 제17호에는 ‘소설 <상록수>와 공동경작회’라는 제목으로 윤성의 심훈기념관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의 글이 수록됐다. 이 글을 통해 윤성의 씨는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는 완전히 다른 주장을 펼치고 있어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윤 씨는 박동혁의 실제 모델이 심훈의 조카, 심재영이 아닐 수 있다고 주장하며, 그 근거로 심재영의 농촌계몽 활동이 소설 <상록수> 속 박동혁의 활동과 맞지 않다는 점을 들었다. 소설 <상록수> 속 박동혁은 한곡리 청년들과 함께 자주적인 조직 농우회를 이끌어간다. 그리고 조선 총독부의 주도 아래 조직된 관변조직인 진흥회와의 갈등관계에 있는 것으로 그리며 진흥회를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윤 씨는 “실제 심재영이 만든 공동경작회의 주요 사업을 보면 못자리 개량, 줄모심기, 보리밭 북주고 밟기, 생활개선 등이 있다”며 “이는 소설 속 박동혁과 갈등 관계에 있는 진흥회로 볼 수 있는 조선총독부가 주도했던 농촌진흥자력갱생운동으로, 공동경작회의 고유 사업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또한 “심재영의 글들을 모아 정리한 책 <사랑하는 나의 마을에 서서>에서 심재영은 ‘우리는 어느 편이든 우리에게 실질적으로 유익한 일이면 무엇이든지 했다’고 술회하고 있다”면서 “소설 <상록수> 속 박동혁은 자주주의 노선을 지향하는데 반해, 심재영은 실용주의 노선을 지향한다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심재영은 1930년 경성농업학교를 졸업하고 농촌운동을 하기 위해 당진에 내려왔다. 당진에 내려온 첫 해에 그가 한 일은 45평 규모의 기와집을 짓는 것이었다. 윤성의 씨는 “당시 45평 기와집은 농촌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대저택”이라며 “소설 <상록수>에서 박동혁은 농촌운동 지도자라는 백현경의 집에 초대받아 그 집이 으리으리하고 생활이 사치스러운 것을 보고 비판했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윤성의 씨는 심재영의 행적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나타냈다. 심재영의 글 <사랑하는 나의 마을에 서서>를 보면 그는 “증조부가 짓다 두신 문도 없는 초막에 포장을 치고 자취를 하며 약간의 산과 벌판을 개간하였습니다”, “증조모께서 베등거리며 잠방이를 지어주셔 처음으로 입었을 때는 나도 이제는 진짜 농군이 되었구나 하는 마음에 참으로 기뻤습니다”라고 저술돼 있다. 그러나 심재영은 1931년에 부유한 가옥을 지어 살았으며, 같은 책에서 그의 증조모가 하세한 날짜는 1921년이라고 기술돼 있다.

윤 씨는 “왜 앞뒤가 맞지 않는 글들을 썼을까 고민했다”며 “본인이 소설 <상록수>의 주인공 박동혁의 모델임을 내세우기 위한 방편이 아니었을까 싶다”고 주장했다.

한편 윤성의 씨는 “송악읍 부곡리에 위치한 심재영 선생이 살던 가옥이 그가 직접 지은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의 저서와 글들을 다시 검토하다 여러 의문이 들어 ‘소설 <상록수>와 공동경작회’라는 글을 쓰게 됐다”며 “이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는 반론이 제기돼 다시 검증하고, 부디 심재영 선생을 박동혁의 모델로 여기며 그를 존경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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